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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지소리(고성농요)의 근황(近況)   2013-05-23 (목)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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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1977년 6월까지 6년간 주말과 방학을 이용 고성군내 사랑방 노인당 정자나무 밑을 다니면서
녹음 채록하고 정리한 결과 고성의 농요(등지)소리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은

①고성들판을 중심으로 東南部 지역으로서 거류면 가려리 은월리 신은리 송정 구현 월치 용산
율대리에서 가장 활발했으며 조선말엽 통영으로 가던 경상감사 일행이 고성들판을 지나다가
농부들의 등지소리에 감탄하여 행렬을 멈추고 해지는 줄 모르고 어두워지자 농부들을 따라가
모캣불을 피우고 밤을 새우면서 소리를 듣다가 다음날 후한 상을 내리고 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었으며 해방 후에 고성군에서 등지(농요)대회를 열었는데 신은부락 李烈洙(1974년 당시 60대
후반)옹이 뛰어난 소리꾼으로서 1등을 했으며(제보자/故黃泳基. 李極性. 黃敬閏. 趙賢植)

 ②고성들판을 중심으로 북 서부의 고성읍 동외리 우산리 대평리 죽계 상리면(박판갑) 마암면(이상부)
등지에서는 특별한 소리꾼이 없었으며 우산리 崔圭七(오광대)옹이 뛰어났고 千義生의 도리깨소리와
상사소리를 잘 구사 했을 뿐 李相洙씨는 노래보다 회원 모집에 공로가 있었는데 1977년도
제28회 개천예술제와 78년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강원도춘천)에 출전연습 당시에 전 회원들이
수차의 협의와 토론 끝에 男唱으로는 李烈洙. 女唱에는 柳英禮(호남태생)로 선정하고 전국무대에
출전하여 우수한 성적들을 거두었으나 李烈洙옹이 황소에게 밭치는 사고를 당하여 공연을 못하게
되었고 얼마 후 사망하여 대신 李相洙씨가 맡게 되었는데 이상수 씨의 긴 등지소리 는
제 1. 2 악구에서 두 번 굵게 굴러서 내는 소리 외는 달리 다르지 않고 유영례 씨의 소리는
부를 때 마다 목 굴림과 음 길이가 바뀌어 향토성이 없는 전라도 태생의 육자배기 토리였는데
농요는 전문가들이 부르는 공연용 예술음악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 삶 속에서 부르는 소리기에
李相洙씨는 기량이 부족하여 회원들이 아쉬워했지만 李烈殊옹의 사망으로 부득이 保有者로
代行신청하여 1985년 보유자로 지정받게 되었는데 지정 후 한 번도 공식무대에서 소리를 하지
못했고 1988년까지 매년1회 문화재 관리국에서 서울놀이마당에서 개최하던 전승자 평가 심사에
건강상의 이유로 매년 불참하자 회장(김석명)이 대신 불참 사유서를 제출하여 무마해 오던 중
1988년 갑자기 사망하였고 이상수 보유자 사망 후 당시보유자 후보이던 김석명(회장)은 보유자의
승계포기를(문화재관리국에까지) 선언하고 박이도. 천의생 에게 승계를 위임했으나 서로 양보가
되지 않고 3년간 갈등이 심하여 전회원의 추대를 받아 1992년 7월 보유자로 승계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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