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사로잡았던 4박 5일 (紀行文)
- 고성농요의 중국 공연을 마치고 -
글쓴이 : 김정순 (고성농요회원)
경쾌한 리듬을 연주 하듯 자명종 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2012년 10월 10일, 맑고 싸아한 공기를 마시며 비교적 포근한 날씨의 고성을 출발하여 중국 강소성 회안시 회음구 농민 예술제 개막식 참석차 27명의 단원(회원 23명, 초청인사 4명) 이 인천 국제공항에서 중국 남경 공항을 향해 비행을 시작한 시각이 12시 15분.
북극의 눈 덮인 어느 산야를 내려다보는 듯, 구름띠를 두른 마법의 성을 지나는 듯, 새벽 아슴한 빛살을 받은 목화밭에 몽실몽실 핀 목화 꽃송이를 보는 듯, 지나는 곳마다 구름꽃밭을 이루는 청명한 하늘을 날아 남경 비행장에 도착한 시간이 14시 15분 쯤.
설레는 마음을 다듬으며 남경 비행장의 출구를 나서는 순간부터 몸으로 확 전해져 오는 반가움과 극진한 예우는 시작에 불과 했다.
한달음에 달려와 얼싸 안고 기뻐하고 반기는 중국기관의 사람들과 통역관, 그리고 가이드를 맡은 친절한 금자씨 와의 만남은 앞으로 4박 5일 간의 아름답고 돈독한 우정의 일정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고성농요가 쌓아 놓은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그 노력 속에는 김석명 회장님께서 쏟아 부은 심혈과 열정, 허덕순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회원들의 협력, 그 모두가 뭉쳐진 결과요 업적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극정성의 예우와 환영은 상상 그 이상 이었다. 회장님께서 국빈의 대접을 받을 것이란 말씀이 몸으로 가슴으로 실감되는 순간순간 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난 듯 반갑고 들뜬 분위기 속에 중국 국가 기관에서 내어 준 전용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 회안시의 한 호텔에 도착한 시각이 17시 30분. 현지 사정으로 30분 늦었는 데다 방 배정하랴 필요한 짐 풀랴, 그러다보니 시간이 너무 짧아 당초 18시에 예정된 환영 리셉션 참석에 입으려 곱게 지어 간 우리 전통 한복을 입을 시간이 없어 입지 못해본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구김이 덜 가는 한복식의 연습용 단원복을 단체로 입고 참석했는데 인기 쨩 이었다.
늦은 시각임에도 농요를 기다리고 계신 보도부 손부장님, 각 기관의 관련 공무원, 수행원들, 사진기사들, 우리 단원들만큼이나 많은 환영객으로 만찬장은 화기애애, 만원사례다.
중국 민요와 우리 한국민요와 춤이 함께 어우러진 뒷 풀이 한마당은 오는 동안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 주고도 남았다.
비싼 술과 중국 전통음식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우리 입맛에는 다소 짜고 맞지 않았지만 고성농요를 환접하는 그들의 정성은 최고였고 국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값지고 특별한 요리들이 그야말로 끊임없이, 쉴새 없이 나왔다. 호오 과연 고성농요!
혹시나 소홀 할까, 불편할까, 무한한 관심으로 신경 쓰는 진정성이 큰 울림으로 가슴에 닿는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 할까.
다음날 11일일엔 본 공연은 없었지만 공연장 사전답사와 리허설이 있었다.
회음구의 웬지샹(?) 이란 마을에 우리가 공연할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앞서 중국 팀의 리허설이 있었는데 그곳 유명 연출자께서 직접 지휘를 하며 조금이라도 미흡하다 싶으면 다시 되풀이하기를 반복 하는 모습이 한 편으론 리허설이 아닌 적응연습인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꼼꼼한 태도가 무척 호전적이었다.
리허설임에도 많은 관계자가 참석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박수로 환영하는 모습과 심심찮게 현지 주민들도 모여 들고 관람하여 마치 본 공연을 하는 느낌이었다.
본 공연 못지않게 긴장 되고 힘든 리허설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위대한 성찬 같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가이드와 통역사를 따라 주변의 견학에 나섰다. 우리가 가는 곳곳이 관광지가 아니었으므로 관광이라기보다는 견학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그 지방의 문화와 역사, 풍물과 삶의 현장들, 이곳 저곳 둘러보면서 일반 관광객과는 다른 차원으로 중국의 다른 단면을 볼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중국 역사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한신’의 역사관과 그 어머니 표모에 대한 얘기등 ,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 그리고 사적 사료와 전해져오는 구전 같은 설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고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진정한 관광의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저녁 만찬을 마치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의 시설이 최고급이 아니라 하여 회음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호텔 방이 부족하여 부득이 작은 호텔에 하루를 묵게 하였다고 심심 미안해하면서 우리를 인도 하였는데 귀빈을 모시는 호텔이라며 이 호텔 하루 방 값이 우리 돈으로 삼십만원짜리 란다. 아이구야 이런 호강을 어디 가서 누려 볼까나. 나중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낸 남경의 호텔 방 값은 하루 오십만원이라 해서 또 한 번 놀라버리기도 했지만.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플랭카드의 커다란 글자, ‘열렬히 환영 한국고성 농풍설보존회 친구들’ 그 글자들을 나는 보고 또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경남의 고성을 모르는 이 많고 고성의 문화나 문화재, 고성의 소리, 고성의 농민문화에 대해 아는 이 많지 않은데 먼 이국땅에서 한글과 중국어로 환영하는 우리 고성의 농풍설보존회 친구들이란 글자는 고성농요를 인정 받고 세계화에 또 하나의 동지를 얻은 듯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우리의 소리, 농요의 소중함을 일찌기 깨닫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릴 뻔한 우리 민족의 뿌리를 발굴 개발 보전하고 국내 뿐 아니라 세계화에 힘쓰는 회장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찌 이곳 중국에까지 우리 민족의 혼의 소리, 고성의 소리가 내 고향 뿐 아니라 나아가서 한국을 알리는 소리로 존재 할 수 있었겠는가. 멀리 나가면 가까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하던가. 멀리 중국까지 와서야 회장님의 농요사랑과 나라사랑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어디를 가나 한복을 고집하시고 단원 모두에게 우리 옷 입기를 권고 하시는 모습, 손아래 회원에겐 아들딸이나 동생 같이, 손위 회원들에겐 형님이나 누님같이, 자신도 피곤 하실텐데 회원들의 체력과 휴식을 위해, 불편함을 위해 배려하시는 모습은 평소 보지 못했던 작은 발견이라 할까.
우리가 숙식하고 휴식하는 공간은 고급 호텔답게 쾌적하고 너무나 편안했다.
다음날 12일, 본 공연이 시작되는 날이다. 공연시간 오전 9시.
아침 일찍 준비하여 호텔에서 30분 거리의 공연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3천명도 훨씬 넘는 군중이 온 광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이른 아침 시간에 상상이 가지 않는 수많은 관객이 운집해 있음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객은 계속해서 모여들었고 우리의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저들에게 진정한 우리의 것을 실수 없이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함께느끼게 해야 겠다는 사명감이 절로 솟아 오른다.
준비한 객석은 가득 찬지 벌써 오래고 ‘중국과 한국의 무형문화재 교류 공연’ 이라고 쓴 아취형의 대형 문을 지나 발 디딜 틈 없이 공간을 메운 사람들 틈 속으로 우리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박수로 길을 열어 주었고 사람 숲에 뚫린 좁은 오솔길 같은 통로를 통하여 탈의실로 향할 때 그 찡한 감회를 어찌 말로 표현 할 것인가.
여기가 어디인가, 문화, 풍속, 언어가 다름은 당연 할 것이고 제도와 이념이 다른 사회가 아닌가, 그곳에 우리의 뿌리를 알리고 보여 주려고 왔지 않은가. 이벤트 하듯 그냥 온 것이 아니고 국가 기관을 통한 국가와 국가 간의 공적 교류가 아닌가. 국가 기관의 기관장급 관료들이 나와 환대하고 접대 하는 것을 몸소 보고 느끼며 고성농요의 위상과 김석명 회장님의 노력과 공적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란 인식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으로 국위선양과 공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는 평소 회장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선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절로 솟았다. 이런 가르침과 마음가짐이 곧 애향이요 애국이라 일컬어도 되지 않을까.
제 3회 농민 예술제 개막식 공연이 시작되고 우리는 정말 힘을 다하여 공연하였다.
중국의 민속 공연과 우리 농요의 공연이 교대로 섞여 진행되었는데 우리의 공연이 한 마당 한 마당 끝날 때 마다 보내주는 환호와 박수갈채는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중국인이 색깔이 전혀 섞이지 않은 전면 백색을 상복이라 싫어한다 해서 비록 푸른색 조끼를 입긴 했지만 우리 민족의 표상을 알리듯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하얀 바지저고리로 모심기를 하고 김을 매고 보리타작을 하고 여인네들은 점심 채미를 하고 등지춤을 추며 우리의 소리로 부르고 노래하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감명 깊은 장면 장면들이었다.
긴장과 흥분과 뿌듯한 사명감으로 점철되는 가슴을 추스르며 공연을 마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호텔의 급수만큼이나 넓고 웅장한 레스토랑에서 정말이지 성찬 중의 성찬으로 오찬을 들었다. 오찬에는 정말 많은 기관의 사람들과 기자들 사진기자들 그리고 유명 가수와 문화인이 술과 건배와 포옹으로 우정을 다짐하고 고성농요의 중국 방문을 축하해 주었다.
오찬이 끝날 즈음 또 한 번 우리의 흥겨운 민요와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농요식구들과 기관장, 수행원 환영객뿐만 아니라 객석의 모든 사람이 한데 어울려 손에 손을 잡고 레스토랑을 누비는, 호텔이 거대한 축제의 한마당으로 변한 장관을 이루었다.
객실로 돌아와 2시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관광 겸 견학에 나섰다.
표모와 모성에 대한 전시관, 모성을 주제로 33점의 조각 작품을 전시한 테마 공원은 인상적이었다. 인간 본성의 바탕에 어머니의 사랑을 으뜸으로 신성시 여기고 마음의 인성에 모성을 심어 주는 풍조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저녁 만찬 후 9시, 초청 인사님들을 포함한 단원들의 간단한 좌담회가 있었다. 공연을 관람한 초청 인사님들의 객관적인 지적과 더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한 문제점과 해결책등 발전적인 말씀에 우리들은 모두 공감하였고 다음날의 공연에 삽입하기로 하였다.
13일 역시 공연 시간 9시. 공연장은 버스로 40분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유씨들이 모여 사는 우리말로 하자면 유가네 마을이라는 곳이었는데 그 작은 마을에 500명은 족히 넘을 관중이 이미 자리를 잡고 타원을 그리며 앉고 서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 날은 고성농요의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다. 농요 전수관에서 연습한 그 순서대로 막바지칭칭이 마당과 고성 선비춤이 끝나고 옹헤야로 마지막 마무리까지 관중들은 줄어들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며 아쉬워했다. 그들도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라 대한민국의 농사 문화가 신기한듯 했다. 뭔 말인가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고 손짓 발짓도 해 가며 눈을 떼지 않았다.
점심은 시골 농가의 음식으로 차려 졌다. 시골농가의 상차림이라고는 하지만 일류 음식점 못지않은 특식 요리들이 줄을 이었다. 수저를 놓으려 하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곤 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아쉬워하는 모습에 회장님은 짐 간에 묶어 넣었던 악기들을 풀라고 하셨다.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한데 어울렸고 태평소에 장구소리 괭과리소리 북소리 징소리, 흥겨운 우리 가락에 인사나 농민이나 가릴 것 없이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온 마을이 한마음으로 어울렸다.
떠나야 할 시간은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 우리가 버스에 오를 때 길게 줄을 이은 사람들은 우리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부등겨 안고 놓아 주질 않는다. 다시 또 오라고, 한 번 더 보자고 손짓으로 눈짓으로 가슴에 손을 포개며 마음을 전한다.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자 손을 흔들다 흔들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마는 사람들. 우리 회원들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그 순박한 모습이 서로의 눈동자 속에 각인 된다.
이번 중국공연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을 심는 그 심오한 역할을 고성농요가 충분히 해 내고 있다고 생각 한다. 우리의 소리 하나로 우리의 가락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계를 재패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성농요가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이번 중국 공연에 대단한 기대 없이 처음 따라 나섰던 나로서는 중국 국가의 한국의 고성농요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특별한 영접에 분명 어려움이 따랐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비용과 예산을 주저 없이 배정하는 태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고성농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의 공연이었다. 또한 4박5일 동안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며 소홀함이 없었던 친절한 금자씨, 그리고 카리스마의 여인 손부장님, 잊지 못할 사람들이다.
고성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초청 인사님들의 고견과 회원들이 느낀점 등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고성농요의 일원으로서 자부심과 경각심을 함께 느낀다. 무엇이 농요에 대한 진정한 보답인지 깊이 한 번 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고성 농요가 더 넓은 세계로의 진화를 꿈꾼다면 그것은 고성농요 혼자의 힘으로는 이루기 힘든 꿈이라 생각 된다. 그러나 고성농요와 함께 고성군의 모든 관계기관과 언론, 지역의 문화인들, 그리고 지역민의 힘이 하나로 결집된다면 못 이룰 꿈도 아니란 생각도 한다.
다음 해엔 대한민국 경남의 고성, 농요를 찾아 저들의 문화재를 안고 그들이 온다고 한다.
우리에게 과분하게 주었던 그 손 위에 우리의 빈손이 부끄럽지 않기를, 우리가 과분하게 받았던 손으로 서운함을 쥐어 주지 않기를 기도 한다.
현장에서 우리가 함께 뛰고 울고 웃으면서 함께 느끼고 바램 하던 그 소중한 염원이 공허한 말의 껍질로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